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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싶다, 골목의 맛

부산 할매가 만드는 팥빙수

2025.08.07 박찬일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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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수는 신비로운 존재였다. 사각사각, 기계에 넣고 갈아서 쏟아지는 얼음 알갱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더위를 쫓을 수 있는 것 같았다. 부산에 가면 '할매'라는 이름이 붙은 온갖 상품이 있다. 부산에는 부산만의 빙수가 있는데, 여지없이 '할매'가 붙어 있다.
박찬일 셰프
박찬일 셰프

예전에는 여름이면 방송사마다 '납량특집'이라는 프로그램을 많이 만들었다. 

텔레비전 시청률이 높던 때라, 인기 있는 방송은 방영 다음 날이면 시중의 화제가 되곤 했다. 지금도 회자되는 <전설의 고향>은 바로 여름이 대목이었다. 한 맺힌 소복 귀신이 나와서 복수를 한다는 얘기는 오싹 얼어붙기에 딱 알맞은 소재 아닌가. 

참고로 '납량(納凉)'이란 시원함을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귀신물이 방송의 납량이라면, 음식은 빙수가 그 몫을 했다. 나는 빙수를 워낙 좋아해서 십 원짜리 빙수부터 즐겼다. 아니, 즐기지는 못했다. 늘 십원이 주머니에 있는 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인천 중구 영종하늘도시 신축공사 현장에 폭염을 대비한 팥빙수 차가 근로자들을 위해 마련돼 있다. 2024.7.29. (ⓒ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인천 중구 영종하늘도시 신축공사 현장에 폭염을 대비한 팥빙수 차가 근로자들을 위해 마련돼 있다. 2024.7.29. (ⓒ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학교 앞에는 무허가 분식집이나 만화가게가 많았는데, 여름이면 빙수를 팔았다. 에펠탑처럼 생긴, 주물로 만든 수동 빙수기계로 만든 빙수 한 그릇이 십 원이었다. 1970년대의 풍경이다. 

빙수 만드는 장면은 얼마든지 생생하게 묘사할 수 있다. 빙수를 사 먹을 돈이 없어도 침을 흘리며 그 기계 구경을 했던 까닭이다. 

돈을 내면 주인이 아이스박스에서 얼음을 꺼내 기계에 턱 건다. 손잡이를 돌리면 얼음이 빙빙 돌면서 날에 깎여 받쳐둔 그릇에 수북이 떨어졌다. 색소가 든 병을 들어 휙휙 뿌려 숟가락이랑 내주는 걸 받아서 합판으로 대충 짠 탁자 위에 놓고 먹었다. 

시내에 가면 팥빙수와 '후루츠칵테일' 빙수를 먹는 날이었다. 보통 제과점에서 팔았다. 동네의 꾀죄죄한 빙수와는 격이 다른, 아주 고급한 맛이 났다. 우유며 연유를 넣고 얼음도 더 곱게 갈아서 혀에서 부드럽게 녹았다. 

산처럼 갈아낸 얼음이 가득 담긴 그릇도 이내 북극 빙하 무너지듯 쓰러지게 마련이어서 그때마다 내 마음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90년대 들어서 눈꽃 빙수라는 게 생기고 여름 전용 '납량' 얼음과자의 왕에서 사계절 별미로 자리를 바꾸었다. 빙수 전문 카페가 생기고 호텔마다 십만 원에 육박하는 최고급 빙수를 경쟁적으로 낸다. 우리는 빙수 왕국에 산다. 

부산의 국제시장에서 판매하는 팥빙수. (사진=기고자 제공)
부산의 국제시장에서 판매하는 팥빙수. (사진=기고자 제공)

하지만 진짜 빙수 왕국은 부산이다. 광복동에도 용호동에도 빙수 거리가 있다. 국제시장 안에서 빙수 한 그릇을 먹자면 줄을 서야 한다. 

왜 부산이 빙수의 도시인가. 주인은 별 걸 다 묻는다는 표정으로 대꾸한다. 생선 얼려두자면 얼음이 필요하고, 그게 다 빙수 재료 아니오. 아하. 게다가 날도  더우니 빙수 한 그릇이 더 절실했을 것이다.  

부산에 비싸고 요란한 빙수가 없는 건 아니지만 시민들이 사랑하는 건 수수하고 담박한 옛날 빙수다. 부산은 국밥에도 '할매'라는 상호가 붙는데, 빙수도 그렇다. 할매 빙수라. 그저 이름만 들어도 구미가 당기고, 푸근하게 한 그릇 비워내고 싶어진다. 

부산 빙수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고명은 올리지 않는다. 대신 팥을 푸짐하게 얹어준다. 

전국을 석권하고 당대 빙수의 첨단이 된, 얇게 깎아 사르르 녹는 보드란 식감의  '눈꽃 빙수'의 오리지널이 부산이라고 하는데, 나는 그것보다는 소박하고 투박한 부산식 할매 빙수가 좋다. 

너무 달지 않은 팥이, 마치 할매의 정을 보여주듯이 얼음 위로 푸짐하게 담아서 한 그릇 먹고나면 간식이나 디저트가 아니라 한 끼 식사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그런 빙수 말이다. 

미국 가서 사는 내 친구는 냉면광인데, 여름이 되면 큰 도시로 몇 시간씩 차를 몰아 간다. 오직 냉면을 먹기 위해서. 한 그릇 잘 먹고 그냥 돌아가기 서운해서 팥빙수도 한 그릇 사서 먹는다. 몇 해 전인가, 그가 실없는 문자를 보내왔다. 

"내가 서울 살 때 동빙고동 살았잖니. 조선시대 얼음창고가 있었다는 동네 말이다. 우리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대에는 겨울이면 한강에 불려나가서 얼음 부역을 했다잖니. 팥빙수 그릇 앞에 두고 있으면, 왜 그 생각이 나는지 몰라. 나도 늙어간다 야."

시민들이 줄을 서서 빙수 구매를 기다리고 있다. (ⓒ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시민들이 줄을 서서 빙수 구매를 기다리고 있다. (ⓒ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조선시대에는 그렇게 캐온 한강 얼음을 강가에 있는 서빙고, 동빙고에 저장해 두었다가 여름이 되면 궁으로 날라다 썼다. 

차가운 수정과 같은 음료도 만들었겠지만 기본적으로 당시 얼음은 궁의 창고에 쟁여 냉장고 용도로 썼다. 왕이 먹는 음식 재료의 부패를 막기 위해서였다. 

서민들이 얼음을 볼 수 있는 건 겨울 뿐이었다. 여름 얼음은 궁에서나 보는 호사였고 상상 속의 물체였다. 얼음 귀한 건 이렇게 옛날 얘기를 들어야 실감이 난다. 그건 그렇고 얼음으로 만든 최고의 음식인 팥빙수 먹으러 부산 가야겠다. 여름이 저물기 전에. 

박찬일

◆ 박찬일 셰프

셰프로 오래 일하며 음식 재료와 사람의 이야기에 매달리고 있다. 전국의 노포식당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소개하는 일을 오래 맡아 왔다. <백년식당>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등의 저작물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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